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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는 현재 각기 다른 발전 단계, 각기 다른 산업주기와 부문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국가에는 도움이 되는 통화가 다른 국가에는 꼭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당연히 작은 국가보다는 독일의 경제상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이것은 가치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252p) |
조지 프리드먼 지음, 김홍래 옮김, 손민중 감수 '넥스트 디케이드 - 역사상 가장 중요한 10년이 시작되었다' 중에서 (쌤앤파커스) |
'유럽'이 요즘 경제의 화두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핵심에 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현 경제상황의 이해를 위해 '유럽문제'를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유럽의 역사는 '피의 역사'였습니다. 미소 냉전에 이은 소련의 붕괴 이후 20여년간 '유토피아'가 온 듯 보이지만 이런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비극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유럽은 전후 '통합'을 모색합니다. 2차대전 후 유럽석탄철강공통체가 결성됐고 1993년 유럽연합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경제공동체를 만들었고 유럽연합의 대통령까지 선출했으며 단일통화(유로), 공동의 경제정책, 자유무역으로까지 나아갔지요.
하지만 지금 유럽연합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훗날 돌아보면 최근 몇년이 유럽연합의 '전성기'였다는 평가가 나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유럽연합이 위기를 맞이한 가장 큰 이유는 '정치' 문제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통합의 과정이 평화로웠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대통령까지 뽑기는 했지만 유럽연합은 기본적으로 '경제번영'을 위한 공동체입니다. 경제가 좋고 모든 것이 잘 풀릴 때야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전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출발은 13개 독립국가들이었지만 수 십 만명이 죽는 커다란 '희생'을 치르며 남북전쟁을 통해 '하나의 나라'가 된 미국과는 다른 것이지요.
유럽연합은 지금 경제적으로 볼 때 다양한 수준의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같은 강대국에서부터 구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갓 시장경제를 택한 동구의 나라들까지 이질적인 국가들이 존재합니다. 유럽연합의 경제정책, 통화정책은 당연히 이 모든 나라들의 필요를 모두 충족시켜줄 수 없지요. 이런 구조가 경제위기가 오면 갈등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첫 시험대가 됐습니다. 당시 그리스는 2.9퍼센트 성장했지만 이웃나라 이탈리아는 마이너스 1퍼센트 성장했습니다. 두 나라는 유로를 채택했고 이 두 국가의 통화정책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에 달려 있었습니다. 만약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높이면 그리스의 인플레이션 억제에는 좋지만 이탈리아는 신용경색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반대로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이탈리아는 경기회복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리스는 경기과열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문제이지요. 실제로 2008년 하반기를 보면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갈지자 형태를 보였습니다.
WTO 협상 같은 국제협상에서도 국가들간의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선진국인 독일, 프랑스는 자국 기업들이 경쟁력이 있는 서비스업 진출에 관심이 있지만, 루마니아 같은 나라들은 농산품과 공산품 수출에 관심이 많지요. 그런데 유럽연합의 협상대표단은 역내 강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도 한미, 한EU FTA 추진 과정에서 업종별 이해갈등이 표출되지만 그래도 '하나의 나라'이기 때문에 결국은 어떻게든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만, "잘 살아보겠다"고 모인 경제공동체의 구성국가들로서는 갈등해결이 쉽지 않은 겁니다. 우리는 아무리 불만이 있더라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탈퇴'할 수 없지만, 유럽연합의 구성국가들은 사실상 언제든지 탈퇴할 수 었으니까요.
최근 불거졌던 '유로본드'(유로존 공동채권)를 둘러싼 갈등도 좋은 예입니다. 현재의 일부 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로화를 쓰는 17개국이 공동으로 채권을 발행해야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유럽연합의 최강대국인 독일이 반대한 겁니다. 만약 유로본드가 발행되면 연 15%가 넘는 고금리를 감당해야하는 그리스는 훨씬 낮은 비용으로 국채를 발행애 돈을 조달할 수 있겠지요. 돈을 빌려주는 기관은 유로존 전체의 신용을 보고 채권을 살테니 그렇습니다. 그러나 연 2%대의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하고 있는 독일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힘든 선택입니다.
그리스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많은 독일인들은 그리스에 대한 원조를 탐탁치않게 생각했고, 많은 그리스인들은 독일이 사실상 정한 유럽연합의 조건을 따르며 지원을 받느니 차라리 파산을 택하고 싶어 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나라 입장에서는 자신의 통화도 없고 자신에게 필요한 통화정책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상황인데도 유럽연합을 좌지우지하는 부유한 나라들은 지원도 하려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지는 겁니다.
유럽연합이 미국이나 한국처럼 '하나의 나라'가 되어 부유한 국가들이 가난한 국가들을 지원하며 통합을 향해 지금보다 더 진전할 수 있을까요? 독일, 프랑스 등의 부유한 나라들은 물론 모든 나라들에 각자 '국내 정치'가 존재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만약 유럽연합이 분열되고 그 여파로 유럽경제가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는 세계경제와 우리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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