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변동 공포증'(fear of floating)과 한국경제 :: 행복한 가치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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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같은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나라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다른 통화로 돈을 빌려야 한다. 자국통화는 해외 채권자에게 별로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국통화의 가치가 하락하면 채무자는 더 많은 돈을 상환해야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중앙은행은 절하폭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

여기서 다른 통화로 돈을 빌리는 신흥국들이 겪는 '환율 변동 공포증'(fear of floating)이 생긴다. 신흥국의 중앙은행들은 환율을 관리하기 위해 다른 목표를 희생시켜야 한다. 환율을 안정시키려면 다른 나라의 금리와 보조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자유롭게 정책을 추진할 여지가 줄어든다. (282p)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김태훈 옮김 '달러 제국의 몰락 - 70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한 달러의 탄생과 추락' 중에서 (북하이브(타임북스))
'환율 변동 공포증'(fear of floating). 우리나라 같은 신흥국들이 겪곤 하는 '고통'입니다. 좀더 범위를 넓히면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이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우리의 경우는 특히 10여년 전 '환란'이라고 불렀던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었고, 가까이는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지난 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 때도 환율 불안에 숨을 죽였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미국은 우리와 입장이 다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미국 연준은 필요한 만큼의 달러를 찍어서 달러가 부족한 은행과 기업에게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은행은 원화만 찍어낼 수 있지요. 그래서 경제위기 상황이 도래해 국내의 은행과 기업들이 해외에서 달러를 빌리지 못하거나 채무 만기 연장을 거절당할 경우 외환보유고 이외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2008년 위기 당시에도 외환보유고가 심리적 지지선인 2000억 달러를 하회하고 외국은행들이 대출의 만기연장을 거부하자 원화가치가 급락하는 '패닉'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의 연준이 한국에 3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간신히 진정되었지요.
 
물론 언제부터인가 '달러의 몰락'이 거론되면서 달러 이후의 국제통화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달러의 몰락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도 지금같은 '호시절'은 가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비용절감과 수출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할 겁니다. 하지만 달러를 대체할 '후보'로 거론되는 유로화와 위안화의 현재 모습을 볼 때 그 시점이 곧 도래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그리스 부도설로 폭등하기 시작한 환율은 이후 70원이 넘게 상승해 20일 1148.4원을 기록했고, 일각에서는 1200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들려 옵니다. 단기부채가 많았던 2008년 보다는 외화유동성 여건이 좋아지긴 했지만, '환율 변동 공포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당분간 불안한 외환시장을 계속 주시해야하는 상황을 다시 맞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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